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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은행 바니 이 행장 “한인사회 경제적 발전상을 지켜보는 것은 직업의 보람”

“여성은 약점아닌 장점입니다. 꾸준한 노력에 여성의 이점을 더하면 없던 기회도 만들어집니다.”   올해로 은행권에 입행한 지 35년 차 한미은행의 바니 이(사진) 행장은 “(제가) 행장이라는 자리에 올라서기까지 단 한 번도 여성이라서 차별을 받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행원으로서 주어진 일을 최대한 성실하고 정확하게 처리했다. 다른 사람이 하나할 때 하나 더하고 다른 이가 고민하지 않을 때 조직의 성장에 대해 숙고하고 도움이 되도록 노력한 게 성공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989년 옛 중앙은행에서 차세대 은행권 인재를 육성하는 매니지먼트 트레이니 프로그램으로 은행계에 첫발을 들였다.     이 행장은 옛 나라은행의 최고크레딧책임자(CCO), 신한아메리카 서부지역총괄, 옛 BBCN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쳐 2013년 한미은행에 COO로 취임했다.     이후 한미은행에서 대출, 예금, 마케팅 등 전반적인 은행 업무의 총괄 책임을 지어왔던 그는 6년이 지난 2019년 한미은행의 첫 여성 행장이 됐다.   이 행장은 다소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은행권에서 여성이라는 점을 걸림돌로 다가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여성이라는 자신의 가치를 문제로 보지 않고 기회로 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주어진 삶을 어떻게 풀어가는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행장이 되기까지 함께 일한 최고경영자(CEO)는 총 11명. 이 행장이 모두 선생님이라고 여기는 그들은 남성들이 주도하던 은행권에서도 그에게 공평한 기회와 동등한 가르침을 줬다고 한다.     그가 고집하는 경영 철학인 진실성, 투명성, 공평성, 팀워크 등 네 가지 가치관이 어디서 왔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오히려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보다 은행권 실무에서 더 두각을 나타내는 장점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여성만의 섬세함으로 고객 관리 및 관계 유지, 새 영업 유치 등 뱅커로서의 과제를 꼼꼼히 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곧 실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실적이 우수하면 주위의 인정과 승진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이 행장은 뱅커로서 고객의 니즈를 가족처럼 챙기는 섬세함과 동시에 꾸준한 자기 계발로 자신을 준비할 때 성공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다시 한번 짚었다.   그는 “기회가 찾아왔을 때 이를 잡는 것은 준비된 자만의 특권”이라며 “자기 계발을 통해 은행 업무 실력뿐 아니라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 역량도 꾸준히 키워나가는 게 본인을 한 단계 더 높은 위치에 오르게하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어느 업계든 여성이기에 가정을 꾸릴 때 더해지는 심적, 육체적 부담은 그에게도 매번 큰 고민이었다고 설명을 더했다.   “여성으로서 직장생활은 물론 가정과 자녀, 부모님을 부양하는 등 가정과 일을 병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를 수년간, 수십 년간 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지금 하는 일에서 느낀 재미와 보람입니다. 한인은행에서 일하면서 한인사회의 성장을 지켜보고, 함께하는 고객분들과 오랜 관계를 이어나간 것이 힘든 일상 속 매번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던 계기입니다.”   한 직장에서 오랜 기간 본인의 시간과 커리어를 투자하는 오너십 마인드도 그가 밝힌 성공 비결 중 하나다.     “한 분야를 오래 팠다는 건 그만큼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웠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은행권에서 여성들은 고객 상대에 능하고 한 분야에서 오래 투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국내 첫 한인은행인 한미은행의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세워진 것이 아니듯 누구나 꾸준히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다 보면 자연스레 성공도 따라옵니다.”   차세대 뱅킹 리더를 육성하는 게 그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다. 이에 대해 그는 “최근 대형은행에서도 점차 차세대 육성 및 발굴 프로그램이 사라지고 있어서 안타깝다”며 “행장으로서 한인 커뮤니티의 위상을 높이는데 (제가) 조금이나마 일조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한미은행이 지속해서 교육생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이 일환”이라고 말했다.   우훈식 기자 [email protected]한미은행 한인사회 한인은행인 한미은행 여성 행장 이후 한미은행

2023-09-21

[리얼 시니어 스토리] "이민 첫해 학비 대출이 은행과 첫 인연"

옛말에 '인생에는 (최소) 3번 기회가 있다'는 것이 있다.   첫 한인은행인 한미은행의 박창규 전 이사장(2002-2004)에게는 특히 그런 것 같다. 물론 기회를 잡고 안 잡고는 개인적인 문제지만, 그는 모두 잡았다.   첫 기회는 미국 이민이다. 1941년생인 그는 서울대 약대를 나오고 이민 오자마자 USC약대를 마친 후에 바로 한인타운에 한인이 주인인 첫 약국(올림피아 약국)을 열었다. 지금은 50곳도 넘을 정도로 한국말이 통하는 약국이 많지만 당시에는 한인 약사가 드물어 말이 잘 안 통해 약도 제대로 못 먹던 상황에 구세주 같은 역할을 했다. 문전성시 덕분에 2호점 웨스턴 약국, 3호점 세라노 약국의 문을 열었다.   대략 3번째 기회는 1982년에 왔다.     "어느 날 평소 신뢰가 두터웠던 정원훈씨가 은행을 설립하겠다고 집에 찾아왔어요. 당시엔 한인 자본으로 세운 한인 은행이 없었기 때문에 창립 이사들에겐 모두 큰 모험이었던 셈이죠."   그래서 한미은행 창립 이사가 됐다. 총 500만달러를 조지 최, 안이준, 안성주씨와 모았는데 그중 6%쯤을 투자했다. 지금 되돌아 보면 은행에  투자한 것이 쉬워 보이지만 정 초대 행장을 100% 신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당시에 더 공격적인 부동산 투자나 더 안정적인 금융 상품에 투자했다면 훨씬 더 큰 돈을 벌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한인들에게 친근한 한인은행을 원했다. 한인타운에서 돈을 벌었기에 한인들의 비즈니스를  도울 수 있는 은행을 시작한 것이다. 결과는 "한때 한미은행 너댓번째 개인 주주까지 됐다"고 전한다.   그에게 은행은 또 다른 인연이 있다. 미국에 온 첫 해, USC약대 진학하고 보니 첫 1년 학비 7000달러를 구할 길이 없었다. 크레딧도 없고 어디 붙었는지도 모르는 코리아에서 온 낯선 학생이 약대 학비를 빌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가 지금도 고맙고 감사하는 일이 그때 일어났다. 은행 대출 담당 직원이 그의 얘기를 듣고 학비를 빌려줬다. 코리아에서 온 낯선 학생에게는 매우 기적같은 일이다. 불과 10여 년 후 창립 이사가 된 것도 미국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이다.   네번째 기회는 58세 은퇴 후에 왔다. 돈은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돈 보다 더한 것을 얻었다.   "어려서 이은관의 배뱅이굿, 강옥주의 회심곡을 좋아했다"며 그는 "평생 판소리를 꿈꿨는데 음악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판소리는 물론, 색소폰과 아코디언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만났다. 취미생활에 그치지 않고 봉사활동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교회, 양로원까지 공연에 나서고 있다.   이 뿐이 아니다. 미주에 국악을 알리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2013년부터는 후원하는 '미주한국국악경연대회' 대회장을 맡았고 올해 10회 대회는 10월28일에 개최한다. 또 고원기념 사업회를 설립해 고원문학상을 제정하는 등 문화 사업에도 힘을 쏟으며 보람을 얻고 있다.   박 전 이사장은 "그 옛날 대출 담당 직원을 찾아 보은하고 싶다"며 "그때 학비 대출 덕분에 한인 은행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는 것을 알면 매우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이민 첫해 한인은행인 한미은행 은행 대출 한미은행 창립

20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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